프로이드가 독일어로 쓴 정신분석은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번역 문제라고만 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영어 번역을 통해 접하는 프로이드와 이론은 그가 말한 '영혼'을 잃어버렸다고 평가받는다. 그에게 분석을 받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프로이드와 베텔하임이 쓴 ‘프로이드와 인간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프로이드의 모습, 실제 내담자들에게 매우 따뜻한 인물로 기억되는 분석가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드. 그는 활동하던 당시에도 정신치료계의 제왕이었으며, 이후 정신분석, 자아심리학, 대상관계 이론의 걸출한 인물들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로 비유될 만큼, 그의 발견과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프로이트에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파이프를 문 상당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 무언가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빛과 분위기, 무의식을 발견한 20세기의 손꼽히는 사상가, 유아 성욕설, 외디푸스 콤플렉스, 일렉트라 컴플렉스 등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자기애에 상처와 충격을 준 인물, 이러한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에게는 반종교적이고 반사회적인 인물, 그리고 유대인 등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치료자의 중립성, 해석과 통찰을 중요시한 치료방식 등이 결합되어 그에게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실제 프로이드에게 분석을 받은 내담자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중립성을 강조하며 치료자의 감정을 절제하도록 하는 엄격함, 분석과 해석이라는 방식이 가진 다소 권위적인 모습 뒤에 굉장히 따뜻하고, 진정한 관심과 염려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쉽다.
프로이드와 코헛에게 분석과 치료를 받은 내담자들이 생존하고 있을 당시, 그들의 분석 경험을 물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흥미롭다. 프로이드와 코헛이 강조하는 치료자의 태도는 다른데, 그들이 다루었던 주요 문제의 성격과 그 기원이 다른 점도 있다. 프로이드는 치료자는 빈 스크린처럼 존재해야 하며, 치료자의 중립성을 강조했다면, 코헛은 치료자의 공감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치료자가 내담자의 결핍되거나 부족한 자기 대상 경험의 발달을 도와주면서 자기의 발달과 회복을 돕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들에게 분석과 치료를 받은 내담자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프로이드를 만났던 내담자들은 그를 아주 따뜻한 인물로 기억했다고 한다. 반면, 공감을 강조한 코헛을 만났던 내담자들은 그를 차가운 어머니처럼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이해되기도 하는 그런 결과이다. 그리고 얄롬에 의하면, 프로이드가 아주 딱딱하게 중립적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에피소드에는 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염려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드가 독일어로 쓴 정신분석과 영어 번역본과의 차이
프로이드의 동료이자 전기 작가였던 어니스트 존스는 정신분석의 영어번역본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프로이드의 문체답지 못해서 그의 인격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주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프로이드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의 활동, 흐름을 느껴보길 바라며, 마음이라는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고심하여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라는 표현보다 영혼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고, 이는 마음에 비해 매우 정서적인 울림을 갖는 표현이다. 그는 영혼의 현상을 잘 전달하기 위해, 풍부한 은유가 담긴 표현과 신화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적합한 단어가 없을 경우, 단어를 조합하여 새롭게 표현하였다. 그래서 독일어로 쓴 그의 글을 매우 체험적인 글이고, 쉬운 표현으로 쓴 글이었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영혼의 현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전달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매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영어 번역본과 그 영역본을 토대로 재번역된 대부분의 책에서 그가 담고자 한 영혼, 영혼의 현상과 방식을 느낄 수 없다. 번역된 정신분석은 전문용어가 난무하며, 읽으면서 자신의 체험적인 글이기보다는 어떤 것을 관조하거나 거리 두는 태도를 만든다. 자신의 영혼 현상을 경험하고, 느끼기보다는 어떤 현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분석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에 대해 Weiss(1950)는 "개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신체는 나한데서 경험되는데, 그 어느 것도 자아(영어 번역본에서 사용한 표현)에서 경험되지 못한다는 것을 덧붙일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배우는 것은 본질에서 멀어진, 영혼과 정수가 빠진 프로이드이다.
나아가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도 배우는 그의 이론의 주요 개념인 id(원초아), ego(자아), superego(초자아)와 같은 기본 개념들조차 실은 프로이드가 사용한 적 없으며, 그가 표현한 의미와는 사뭇 다른 잘못 번역된 결과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프로이드는 es(그것), ich(나), uber-ich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표현으로 독일인들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은 es로 표현되지만, 영어 번역인 id, ego, superego는 자신과 관련된 어떤 정서적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 죽은 표현으로 남아있게 된다.
베텔하임의 책, 프로이드와 인간영혼
브루노 베텔하임은 잘못된 번역으로 프로이드 이론의 핵심이 잘못 이해되고, 전파되고 있음을 밝히는 책인 '프로이드와 인간영혼(Freud and Man's soul)'을 썼다. 잘못되고 있는 번역을 올바로 잡는 일은 너무 방대한 일이라 자신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프로이드가 쓴 정신분석이 A 라면,많은 사람들이 아는 정신분석은 A'' , 혹은 AB 정도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서 수련을 받은 윤순임 선생님이 소장으로 계신 서울정신분석 연구소의 연구원 세미나는 독일어로 된 원서를 읽기도 한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이 얼마나 잘못 번역되어 잘못된 인상을 준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며, 그의 영혼의 따뜻한 측면을 일부 느낄 수 있어 새로울 것이다. 실제로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은 사랑을 통한 치료이다'라고 말을 했다.
앞서 언급한 잘못된 영어 번역은 보다 정서적인 울림과 은유적인 표현들을 어떤 고정된 실체, 객관화함으로써 혼을 잃어버리게 하였는데, 이는 기술과 물질문명을 보다 강조한 미국의 문화, 행동주의의 태동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어 번역은 자신의 영혼 현상을 자신과 거리를 두게 하고 대상화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프로이드가 강조한 '영혼'을 살리지 못한 점에서 가장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의사들과 번역가들은 자신들이 아는 어려운 라틴어나 의학용어, 객관적 실체로 고정하는 표현들로 프로이드가 고심하여 쓴 언어를 쉽게 바꾸어버렸는데, 이는 의미 전달에서 다르며 전혀 다른 이미지를 남겼다. 프로이드도 생전에 잘못된 번역의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며, 이에 대해 다소 체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근본적으로 다소 비극적이고,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졌던 프로이드에게 미국 문화는 얄팍한 낙관주의, 나르시시즘을 옹호하는 것으로 다가와 이에 따르는 희생, 불편감에 대한 염려를 보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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