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한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속상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느낌이 먼가 의아하고, 맞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 눈물이 가진 감정의 밀도도 없었고, 그냥 쉭-하고 지나가버렸다. 이어진 아이의 표정 변화나 참여하는 방식도 이상했다. 난 이 아이의 도구적 정서가 떠올랐다.
누군가 강렬한 감정을 쏟아냈는데, 혹은 자신이 그러한 감정을 쏟아냈는데 그 뒤에 마치 그냥 뭐가 지나간 것처럼 뭔가 으잉? 스럽거나 당시 보여준 눈물, 감정의 강렬함과 달리 너무 남는 게 없다면, 아마도 도구적 정서(부적응적인 도구적 정서)를 경험한 것이다.
인간의 정서, 감정의 문제를 보다 세분화하여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 EFT)의 분류는 유용성이 있다. EFT의 공동창시자 중의 한 명인 그린버그는 정서를 일차적 정서, 이차적 정서, 그리고 도구적 정서로 분류하고 이에 따른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고 한다. 도구적 정서를 알아보자.
도구적 정서란?
도구적 정서란, 어떤 사람이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등 단어 그대로 도구적 성격을 띤 정서이다. 이는 스스로 의식할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도구적 정서는 진정한 정서 경험이 아닌, 사회적인 상황에서 보여주기 위한 정서이다 순수하게 일어난 일차적 정서가 아니기에 진정한 정서 경험과 거리가 있으며, 그 정서에 알맞은 적응적인 행위 경향성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만약, 누군가의 도구적 정서(특히, 매우 부적응적인 도구적 정서)를 진실된 정서라고 여긴다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가스라이팅에서도 자주 보이는 정서이다.
한편, 사회적 지능, 사회정서적 지능이 높으면, 도구적 정서를 잘 활용하고, 세련되게 이를 표현할 수 있다. 인간 정서 생활의 어려움은 대게 타인의 존재와 평가, 대인관계와 얽혀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도구적 정서에는 분명히 적응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부적응적인 정도의 도구적 정서는 이와 구분해야 한다.
(부적응적인) 도구적 정서가 남기는 느낌 - 자신에게도 알맹이가 없다.
부적응적인 도구적 정서는 흔히, 뭔가 울림이 없고, 착취적이거나 피상적이다. 한참 몰입했음에도 남는 느낌은 뭔가 불일치, 정서(표현)가 지나간 후에 남는 느낌-의아함, 뭐였었지?- 등으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도구적 정서는 자신과 대인관계의 건강한 삶과 적응을 위해서는 도구적 정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만큼만 경험하는 것이 좋다.
스스로의 도구적 정서, 도구적 정서의 학습경험을 알아차리기
한 사람이 경험하고, 표현하는 정서에서 도구적 정서가 많이 차지한다면, 그 사람의 정서생활뿐 아니라 대인관계에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 도구적 정서 경험은 만족스러움, 진정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된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 우울, 무기력, 죄책감 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정서 지향적 치료는 도구적 정서의 이면에 깔려 있는 기저의 핵심 감정과 욕구에 다가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L.S Greenberg, S.C. Pavio 저 - 중에서
자신의 정서, 감정 경험을 민감하게 캐치하고, 의식화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이 불편한 느낌은 뭐지?'. 자신이 어떤 정서나 감정, 갈등 등을 도구적 정서로 표현하거나 감추는지 알아채고, 보다 일차적인 근원적인 정서, 감정 그리고 욕구로 돌아가 그에 따른 경험을 창조해야 한다. 자기 내부에서 발생한 자신만의 정서 경험을 제대로 경험하며, 도구적 정서로 표현, 경험하게 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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