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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in 유럽/프랑스

루이 14세, 프랑스 문화 패션의 정점을 찍은 태양왕과 그의 출생 비밀. 루이 14세의 초상화와 현대판 모습

by mini's peach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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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랑스에게 약간 배아픈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로마라는 거대한 자산이 있지만, 프랑스에게 문화, 패션. 음식의 명성을 빼앗긴 느낌이 있기도 하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프랑스 왕비들이 전해준 것이 많고, 더 앞선 문화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의 문화 예술과 패션에 관한 명성은 사실 과거의 후광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그 시작은 루이 14세이다.

프랑스 문화가 처음으로 일류가 되었던 루이 14세 시기 

프랑스 문화, 패션의 명성과 입지는 루이 14세 때 마련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후대에 등장한 가브리엘 샤넬, 크리스천 디올, 입생로랑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루이 14세 시기에 정점을 찍은 영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루이 14세가 왕이던 시절, 프랑스 문화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럽의 다른 왕실과 귀족들은 자발적으로 프랑스어를 일상에서 사용했고, 세계 곳곳에서 베르사유를 모방한 궁전이 지어졌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 영광의 시기의 상징이자 향락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

 

베르사유를 모방한 궁전들. 왼쪽부터 튀르키예의 돌마바흐체 궁전, 독일의 상수시 궁전과 헤렌킴제성. 이 밖에도 많다.

왕성한 에너지에 운도 좋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왕  

루이 14세는 스스로 '짐이 국가다' 라고 선언하고, 국가의 영광을 위해 존재했으며, 이러한 이미지를 잘 연출할 줄 알고, 귀족들을 다루는 것에도 능했다. 77세에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을 집권한 왕이었다. 어린 시절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으며, 운은 그의 편이었다.

자신의 아들, 손자가 죽는 것을 보았고, 에스파냐와 영국, 오스트리아의 왕이 몇 차례나 바뀌는 것을 보았다. 눈부신 태양왕 자체였던 루이 14세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노출하고 연출하는 것에 거리낌 없었으며, 약 300개의 초상화를 남겼다고 하니, 강력한 권력 뿐아니라 자기애가 엄청 났던 것 같다.   

궁정 사람들과 민중들은 우상(루이 14세)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꼈다. 
하지만 새 왕이 탄생하고 나자, 의식과 국가와 국왕 자신이 일체화된 나날을 태연하게 연기한 것은 루이 14세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 중에서-
초상화로 본 루이 14세
현대판 루이 14세. 뭔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출처: Royalty Now

루이 14세 출생의 비밀, 루이 13세가 친부가 아닐 수 있다. 

루이 14세의 어머니는 스페인 왕가에서 온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이다. 안 도트리슈는 오스트리아의 안이란 뜻인데, 혈연적으로 그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후손으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름답기로 유명했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당시 인기남이었던 영국의 버킹엄 공작이 한눈에 반해 구애를 했고, 염문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소문과 뒤섞여 소설 삼총사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왕비가 바로 루이 14세의 어머니인 안 도트리슈이다.
 
안 도트리슈는 아름답고 많은 이들의 흠모하는 대상이었지만, 정작 남편인 루이 13세에게는 관심을 받지 못했고 냉랭한 사이였다. 사실 루이 13세는 여성에게 큰 관심이 없고, 오히려 남성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는 결혼 생활 23년 동안 아이가 없었고, 오래전 몇 차례 유산으로 관계도 냉담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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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갑작스러운 임신

왕비의 출산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도 남을 무렵-결혼 후 무려 23년이 지나 루이 14세가 기적적으로 태어났다. 뒤늦게 출산한 안 도트리슈는 루이 14세에 이어 샹티이 성의 주인인 오를레앙 필립공을 출산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운은 뒤늦게 트이기 시작했고, 늦은 나이에 출산한 루이 14세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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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아버지는 누구?

안이 결혼생활 23년 만에 임신을 하자,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가장 의심받는 사람은 마자랭 추기경이었다고 한다. 

마자랭 추기경

이탈리아 출신으로 후에 귀화한 마자랭 추기경은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신임을 받고, 다음 추기경이자 국가의 재상이 되었다. 당시에도 마자랭과 안 도트리슈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비밀 결혼까지 했다는 설이 있다. 루이 13세가 세상을 떠나고, 두 사람은 어린 루이 14세를 돌보고 섭정하는 파트너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의 동침 및 임신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황, 마자랭이 이탈리아에 머문 시점 등 마자랭이 친부가 아닌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자랭을 가장 많이 의심했다.

또 다른 대리부?

대리부가 있다는 설도 있으며, 이러한 루이 14세 탄생과 관련된 의혹들은 실제 시건과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아이언 마스크(철가면 남자)에도 잘 나타난다.

부르봉 핏줄이 아닌 의혹으로 죽을 뻔한 어린 루이 14세 

어린 시절, 귀족들의 난(프롱드 난)에서 귀족들은 그가 부르봉가의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이려 했다고 한다. 직접 겪은 귀족들의 반란 뿐 아니라 의혹이 많은 출생 배경이 그가 더더욱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절대왕정에 집중하며 귀족들을 쥐락펴락 하도록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루이 14세는 특유의 열정, 카리스마를 갖추고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귀족들의 손에 죽을 뻔 했지만, 결국 시대는 그의 편이었다.

귀족들을 잘 주물렀던 왕
많은 귀족들은 베르사유 영지에 머물길 원했고, 그의 용변 시중을 들기위해 아첨 경쟁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루이 15세나 16세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은둔을 좋아했던 성격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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