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3년전 유난히 따뜻했던 3월의 그 날(따뜻해서 4월이나 5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3월이다)로 돌아간다면, 나는 투표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딱히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잘 알아보기보다는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대략 판단하고 쉽게 투표권을 포기했던 댓가를 몇 년째 치르고 있다.
정치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사실 정치, 정치적 선호도나 판단은 이성의 영역보다도 감정의 영역이라고 한다. 정서가 촉발되는 감정의 영역이기에 생각보다 논리나 팩트로 설득이 어려운 것이 정치 영역이다. 그래서 정치 얘기를 하다가 분위기를 망치거나 싸우는 일이 쉽게 발생한다.
투표권을 포기한 나였지만, 윤석열이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굳이 나까지 더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에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다.
대선 토론과정이나 배우자 비리가 불거지기 전인 검찰 총장으로 언론에 자주 비춰졌던 윤석열과 언론의 이미지 메이킹에서 가졌던 느낌과 인상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다. 공정, 상식을 지키는 약간 긍정적인 의미로 돌-아이 기질을 가진 사람. 이미지는 호였다. 누구보다도 공정한 수사, 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인물같아 보였었다.
하지만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김건희, 장모의 문제들. 사실, 좀 너무 의아하고 놀라웠다.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을 배우자로 둘 수 있지? 모르지 않았을텐데 사랑할 수 있다고? 공정, 상식을 강하게 주장하며, 그것으로 이미지 메이킹해온 사람의 배경으로는 너무나 의아했다.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매우 큰 불일치가 발생해버렸다.
심리학자들은 언어와 비언어, 행동간의 불일치를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미세한 표정의 변화, 미묘한 시선처리도 그의 말의 내용과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이고, 이에 주목한다. 심리치료사라면 불일치와 관련된 방어, 그러한 방어가 필요한 이유에 주목함으로써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진실에 다가간다.
윤석열의 불일치는 눈에 띄는 매우 큰 슈퍼 빅 정보였다. 남 뿐만 아닌 심지어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언어보다는 비언어, 행동이 진실에 가깝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가 아주 정교하게 발달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불일치에서 나는 그가 짝퉁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토론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속았다. 아니 그냥 속아주었다. 그는 요즘 많은 거짓말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학력 위조, 경력 위조 해온 사람? 글쎄...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본 적 없다. 그리고 장모 사기의혹은 의혹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였다. 거침없는 공정 수사를 외치는 사람이(물론 이제는 그것이 공정 수사가 아닌 편파적, 하향적 수사였음을 안다).... 여러모로 놀라운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일을 저질렀고, 그 문제의 뿌리는 불일치를 유발했던 것들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윤석열과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방식 즉 프로세스를 읽는 것과 여러가지 불일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윤리가 실력이다' 라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던 한 교수님이 생각난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부터 윤석열이 대놓고 보여준 불일치의 의미를 간과하게한 다른 상황적 요인도 많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윤리적 기준에 대한 민감도가 너무 낮은게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윤리가 실력이라는 말이 더 와닿을 수 있는 고위직들에게 더 낮은 것 같고, 법적 제한 장치도 너무 빈약하다. 사기치기 좋은 나라, 사기꾼을 보호하는 나라, 사기치고 나와도 몇 년 고생하면 떵떵거리며 사는 나라... 이 꼬리표를 언제쯤 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과연 의지가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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