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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in 유럽/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Palermo). 시칠리아 제 1의 유서깊은 도시이자 마피아의 고향

by mini's peach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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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는 시칠리아 제1의 도시로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도시이며, 팔레르모 대성당 등 시칠리아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의 중심으로 마피아와 떼어놓을 수 없다. 팔레르모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의 흔적, 마피아의 역사 및 마피아 척결과 관련된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 여행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팔레르모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글 순서]

  • 유서 깊은 역사. 건축물에 남은 다양한 문명의 지배 흔적 
  • 마피아의 본고장. 그들의 영향력  
  • 1990년대 이후 마피아 척결 운동과 팔레르모의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의 상징 
  • 1990년대 이후와 현재의 팔레르모 마피아    
  • 여행자로서 느낀 팔레르모 

유서 깊은 역사. 건축물에 남은 다양한 문명의 지배 흔적 

팔레르모의 역사는 기원전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문명 중 하나인 페니키아는 무역을 위해 이탈리아 반도,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식민도시를 건설하는데, 팔레르모는 페니키아의 지배를 받은 항구도시로 역사에 등장한다. 팔레르모의 과거 그리스 명칭인 'Panormu'는 완벽한 항구란 뜻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아랍, 바이킹 등의 침략과 지배와 관련이 있다. 또한, 무역을 하기 좋고, 좋은 요새로서의 위치뿐 아니라 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 시대에는 유럽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곳을 점령했던 다양한 문명의 역사는 팔레르모의 유명 건축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시작하여, 이후 천년의 시간 동안 아랍의 모스크,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그 흔적이 성당의 외관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렇게 아랍의 모스크, 비잔틴의 모자이크, 바이킹의 노르만 양식, 로마 그리스의 양식 등이 한데 어우러지거나, 모스크 사원으로 쓰이던 건물이 이후에는 가톨릭 성당이 되었던 흔적이 건축물의 역사와 양식에 남아있다. 팔레르모 대성당 이외에도 노르만 궁전, 라 마르토라나, 산 카탈도 성당, 산 지오바니 델리 에레미티 성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이곳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마피아의 본고장. 그들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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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본고장이자, 시칠리아의 마피아 조직은 미국 마피아 조직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의 중심 도시인만큼 마피아의 고향으로 일컬어진다. 시칠리아에 100여 개의 마피아 조직이 있다면, 그중의 절반이 팔레르모에 있으며,  유명한 마피아 조직인 코사 노스트라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대부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마피아는 침략자에 대한 저항을 하거나, 자경단과 같은 조직으로 시작되었으나 19세기 이후에는 점차 범죄조직화 되었으며, 시칠리아의 레몬, 오렌지가 많이 수출되면서 수출 작물을 도둑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무력 세력이 필요해졌고, 유통되는 자금이 막대하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마피아가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많은 지역범죄조직이 그러한 것처럼 이들은 팔레르모 상인들에게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금전 요구를 하였다. 아무튼 마피아는 막대한 자본력을 갖고 정관계와도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고, 마약과 주류뿐 아니라 스포츠, 건설 및 에너지 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으며,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업에까지 관여한다고 한다. 2019년에 중국도 울고 갈 가짜라는 제목으로 마피아 조직이 관리하는 가짜 이탈리아 식품에 관한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런 가짜 식품 사업의 규모가 연간 32조 원이며, 이탈리아 수출 식품의 절반이상이 마피아와 관련된 가짜 식품이라고 하니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마피아 척결 운동과 팔레르모의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의 상징 

마피아와 대대적인 싸움을 시작한 팔레르모 출신의 검사 팔코네와 보르셀리노의 사진


 팔레르모뿐 아니라 시칠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팔코네와 보르셀리노라는 두 남성의 사진이나 벽화를 볼 수 있다. 이들은 팔레르모 출신의 검사로, 마피아와 대대적인 싸움을 시작하였던 인물들이다. 이들의 고향이 팔레르모인 만큼, 많은 고향 친구,  친지와 지인들이 마피아로 얽히고 얽혀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굳게 싸움을 이어나갔다.

아마도 팔레르모 출신으로 이 지역과 조직의 생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을 것 같은데, 이들의 수사는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대규모로 마피아를 재판하고, 수감하였다. 당시 재판을 위해, 마피아의 무력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벙커 재판소를 만들었다고 하니 마피아 세력의 규모와 동원가능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짐작 가능하다.

두 검사는 특히, 내부고발을 하는 증인을 잘 보호하고 감형을 해줌으로써 조직의 신뢰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마피아에 의해 팔레르모에서 죽게 된다. 이들은 생전에도 죽음의 위험이 늘 따라다니고 있음을 알았으며, 늘 경호원을 대동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작전을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었던 마피아로부터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먼저 팔코네가 죽게 되고, 팔코네의 죽음 후에도 팔레르모를 떠나지 않고 수사를 이어가던 보르셀리노도 팔코네가 죽은지 약 두 달 후에 마피아에 의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마피아는 이 두 검사를 죽이기 위해 이들이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한 고속도로와 거리의 차량에 폭탄을 각각 500kg, 100kg를 설치하는  대규모의 작전을 수행했다.

두 검사를 마치 영화같은 작전으로 살해한 마피아는 그들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이 되살아나 이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보르셀리노의 죽음은 마피아에 대한 팔레르모, 시칠리아뿐 아닌 전 국민적 분노가 들끓어 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사진을 걸거나 벽화로 그리기 시작했으며, 팔레르모의 한 공항 이름을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팔코네와 보르셀리노가 등장한 1990년대 이후와 현재의 마피아   

 가장 강력했던 시칠리아 마피아도 1990년대 이후, 힘을 잃어갔고, 팔코네와 보르셀리노가 시행한 증인 보호프로그램은 잘 작동하여 지속적으로 효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널리 퍼져있는 마피아와 정관 유착 등으로 마피아 척결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보르셀리노가 늘 들고 다니던 수사노트는 사고 직후 발견되어 경찰관과 이어 다른 검사에게 전해졌으나,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수사노트를 건네받았던 검사는 마피아 수사 재판과 관련된 검사와 판사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인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비난을 받았는데, 얽히고 얽힌 유착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아무튼 1990년대, 팔코네 보르셀리노가 활약을 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점차 힘을 잃어갔으며, 현재에는 가장 강력한 지하조직이라는 명성은 다른 세력에게 넘어갔다.

2023년 1월, 드디어 코스 노스트라의 두목이자 팔코네 보르셀리노 암살 작전에 관여한 데나로가 팔레르모에서 검거되었다. 그는 유유자적하게 병원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30여 년 간의 추적 끝에 코스 노스트라의 두목이 검거된 날, 팔레르모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하며 자축했다. 이제 팔레르모의 시민들은 마피아에 반대하는 그들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마피아의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상인들에게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지만, 이를 내지 않는 상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마피아들은 상인들에게 지원비를 주기도 하는 등 시민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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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로서 느낀 팔레르모

 개인적으로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별로였던 여행지였다. 가장 큰 규모의 도시이며, 팔레르모 대성당 등 흥미로운 역사 유적물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팔레르모의 분위기는 어딘가 죽어있는 도시, 그리고 답답함이었다. 어딘가 억눌려있는, 답답하고 건조한 도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화려한 역사적 유물도 죽은 과거의 유물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곳이 내가 경험하고 느낀 팔레르모였다.  항구도시이지만, 이상하게도 건조한 내륙같고, 대륙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었는데, 거리나 마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내게는 건조하게 느껴져서인 것 같다.  그래서 팔레르모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답답함 때문에 나가서 본 바닷가였다. 항구도시인만큼, 바다가 멀지 않고 운 좋게도 아름다운 하늘과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치안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시내에 있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았다. 첫날 도착해서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한 끼의 식사를 한 것으로 충분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느낀 그 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이해되었는데, 아마도 오랜 세월 마피아, 폭력적 사건의 영향과 그림자가 도시 전반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스며들어 배어있는 것 같다. 대놓고 기분 나쁘지 않지만, 어딘가 불쾌한 느낌,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눈치껏 소통하는 듯한 느낌, 유쾌하지 않은 억제적인 태도와 같은 것이 레스토랑의 써버와 에어비앤비 주인에게서 느꼈던 느낌인데, 냉혹하게 변질된 마피아의 영향이 생활 곳곳에 퍼져있는 곳의 생리가 반영된 결과인 것 같다.

그럼에도 팔레르모를 안 들리고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23년 코스 노스트라의 두목이자 악명 높았던 데나로가 체포되었고, 그때를 기점으로 반마피아 정서와 태도가 보다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마피아들도 좀 더 시민의 눈치를 살핀다고 하니, 도시의 뭔가 억눌린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를 기대해 본다. 참고로 나는 2018년 에 방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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